
어제도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처음엔 동창 단톡방에서 들려오는 누구의 결혼 소식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게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된 건지 마음이 영 씁쓸하다. 사실 소개팅 앱을 깔았다 지웠다 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아파팅’이니 뭐니 해서 사는 아파트 단지로 사람을 인증받는다는 게 참 삭막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있다 보면 그런 효율적인 필터링조차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예전엔 그냥 사람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너무 피로해서 다들 적당히 비슷한 환경인 사람을 찾는 거겠지 싶다.
엄마 친구 아들이 보내는 신호와 그 너머의 온도
얼마 전엔 엄마가 굳이 연락처를 받아온 ‘누구의 아들’이랑 점심을 먹었다. 강남역 근처였는데, 밥값이 꽤 나왔다. 대충 1인당 4만 원 정도 하는 파스타 집이었는데, 대화 내내 우리 엄마와 그의 엄마가 얼마나 친한지, 그리고 그가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맴돌았다. 솔직히 말하면 서로의 스펙을 검증하러 나온 자리 같아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문득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앉아있나 싶어졌다. 결혼정보업체에 수백만 원씩 내고 가입했다는 주변 언니들 이야기를 들을 땐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직접 겪어보니 왜 그 돈을 쓰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적어도 중간에서 누가 필터링이라도 해주면 이런 ‘엄친아’식 만남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가 생기는 거다.
40대 테니스 파티와 묘한 소외감
요즘은 취미 기반의 모임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테니스나 러닝 같은 운동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만나는 파티 같은 거 말이다. 한번은 그런 모임에 호기심이 생겨서 알아봤는데, 참가비가 꽤 비싸서 놀랐다. 주말 오후에 몇 시간 노는 건데 거의 10만 원 가까이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면서 왜 이렇게 인위적인 시스템이 더 판을 치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엔 동문회나 회사 동료 소개로 만나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다들 밖으로 나가서 돈을 써야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 같다. 나도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는 딱히 아는 사람도 없고, 그냥 조용히 퇴근하고 집에서 유튜브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폰으로 알림이 하나 뜨면, 또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어서 들여다보게 되는 거다.
낡은 결혼정보업체 사무실에서의 기억
한번은 정말 궁금해서 이름만 대면 아는 큰 결정사 상담실에 가본 적이 있다. 압구정 어딘가였는데 사무실 분위기가 묘했다. 상담하는 분이 나를 훑어보는 그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왠지 모르게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가입비가 몇백 단위로 오가는 걸 들으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그냥 상담만 받고 나왔다. 그때 상담 실장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요즘은 다들 조건 맞추는 게 먼저예요. 나중에 사랑하면 되죠.” 그 말이 맞는 말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슬펐다. 나중이라는 게 언제일까.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누구나 다 이런 고민을 하나씩 안고 사는 건지, 아니면 나만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 두는 게 편할 때도 있다
결국 어제도 앱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과 흐지부지 대화가 끊겼다. 상대방이 어디 사냐고 묻고, 내가 대답하고, 다시 직장이 어디냐고 묻는 반복적인 과정이 갑자기 너무 지겨워졌다. 어차피 다들 비슷한 루트를 밟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은 그냥 혼자서도 꽤 잘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밤에 혼자 넷플릭스 보다가 웃긴 장면이 나오면 왠지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나만의 속도로 사는 게 더 나은 건지. 매일매일 마음이 바뀐다. 아마 내일도 난 또 같은 앱을 다운로드하고, 다시 누군가와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겠지. 그게 오늘날의 연애 방식이라면, 난 아직 이 방식이 꽤 서툴고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