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한복판에서 느꼈던 묘한 긴장감
지난주 평일 오후,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을 하거나 아예 비혼을 선언하고 자기 앞가림에 집중하는데, 나만 이상하게 중간에서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강남에 있는 한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예약했다. 사실 처음엔 그저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했다. 예전에 TV에서 탁재훈이 나와서 억대 가입비 어쩌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설마 그 정도까지야 싶으면서도 은근히 긴장이 되더라. 강남역 근처의 깔끔한 빌딩 숲 사이를 걸어가는데, 내가 여기서 이런 걸 상담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괜히 민망해서 괜히 이어폰으로 노래를 크게 틀었다.
100만 원부터 1,000만 원까지의 숫자들
상담실에 들어갔더니 커플매니저라는 분이 아주 친절하게 서류를 내밀었다. 연봉이 얼마인지, 부모님 직업은 무엇인지, 자가 소유 여부는 어떻게 되는지 적으라고 했다. 무슨 입사 지원서 쓰는 것 같아서 손이 조금 떨렸다. 가입 비용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라 당황했다. 등급별로 나뉘어 있었는데 대충 300만 원에서 시작해서 비싼 곳은 1,000만 원이 훌쩍 넘더라. 매니저님은 마치 대형마트에서 물건 설명하듯 ‘이 옵션은 횟수가 보장되고, 이 옵션은 등급이 높은 분들을 만날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그 순간 사랑을 숫자로 계산하고 있다는 게 확 느껴져서 멍하니 화면만 봤다.
왜 다들 조건부터 따지는 건지 이해는 가는데
옆방에서 다른 상담을 하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최소 연봉 8천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여성분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그게 너무 차갑게 느껴졌는데, 막상 상담을 받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 그래도 기왕이면 집은 있는 게 좋지 않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 밖에서는 ‘자연스러운 만남’이 최고라고 떠들지만, 사실 소개팅 앱이나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불확실한 사람 만나는 것도 지치지 않나. 차라리 돈을 내고 검증된 사람을 만나는 게 가성비 면에서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진짜 씁쓸했다. 누군가는 부모님이 대신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데, 나는 도저히 부모님께는 말씀 못 드리겠더라.
사진 한 장에 담긴 사람의 가치
매니저가 내 프로필을 보더니 ‘이런 조건이면 이런 분들을 소개해주겠다’며 몇 장의 서류를 보여주는데, 그 속에는 사람 대신 스펙만 적혀 있었다. 사진은 보지도 못했다. 그냥 서른 초반, 대기업, 신장 180cm, 서울 거주. 이게 다였다. 사람이 아니라 마치 중고 거래 게시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물론 효율적이라는 건 안다. 서로 시간 낭비 안 하고 조건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면 깔끔하겠지. 근데 과연 이렇게 시작한 만남이 나중에 싸울 때도 조건을 따지지 않을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그냥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다리자니 기약이 없고.
덜컥 결제하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 가입을 고민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오늘 당장 결제하면 혜택을 더 준다는데, 그 혜택이라는 게 결국 만남 횟수 한두 번 더 넣어주는 게 전부였다. 100만 원 단위의 돈을 선뜻 내고 내 인생의 만남을 기계적으로 돌리는 게 맞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상담료는 무료였지만, 상담하는 내내 느꼈던 그 피로감은 대체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지. 밖으로 나와서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는데, 그 5,000원이 왜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던지. 결정사 문 앞에서는 수백만 원도 고민하던 사람이 커피 값에 인색해지는 게 참 우습기도 하고.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상담받고 후회하는 게 더 힘든 건 알 것 같아요. 커피 한 잔 하면서 생각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상담 자체의 부담감은 컸네요.
스펙만 강조하는 곳에서 진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네요. 주변 친구들 얘기 들으면서 더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결혼정보회사 분위기 궁금해서 간 건데, 연봉 조건부터 따지는 게 오히려 더 답답하네요.
강남 결혼정보회사 분위기가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차분하더라구요. 오히려 상담받는 동안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는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