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코칭이라는 걸 받아보겠다고 결심했던 날의 후회

연애 코칭이라는 걸 받아보겠다고 결심했던 날의 후회

일단 큰돈을 들여 상담을 예약했다

한참 연애가 마음처럼 안 풀려서 답답하던 시절이었다. 주변 친구들한테 털어놓아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그냥 잊어라’, ‘사람이 안 맞는 거다’ 같은 말들. 물론 맞는 말인데 그 당시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알게 된 어느 연애 코칭 업체에 덜컥 연락을 넣었다. 2시간에 25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는데, 당시에는 그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남역 근처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 사무실을 찾아갔다. 가기 전에는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알려줄 줄 알았다. 심리 분석지 같은 걸 작성하면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딱 짚어주면 정신이 번쩍 들 줄 알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기묘한 공기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풍기던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약간 오래된 커피 찌꺼기 냄새와 공기청정기가 뿜어내는 건조한 바람이 섞여 있었다. 상담사는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앉자마자 나한테 ‘상대방의 카톡 말투가 어떻게 변했는지’부터 물었다. 나는 열심히 설명했다. 3개월 전만 해도 ‘ㅎㅎ’가 많았는데 지금은 마침표로 끝난다는 둥, 답장 시간이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었다는 둥. 지금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인데 그땐 그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 지표였다. 그 사람은 내 말을 듣더니 메모장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대단한 분석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밀당을 좀 더 강하게 해서 상대방의 불안감을 자극해야 한다’였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상담이 중반을 넘어가니 점차 짜증이 났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내 감정은 뒷전이고 오로지 ‘기술’에만 집착하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일부러 30분 늦게 답장을 보내라거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잘 노는 사진을 올려서 질투를 유발하라는 식이었다. 나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중학생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진지하게 조언으로 들으니 현타가 왔다. 1시간 정도 지나자 상담사가 다음 세션 연장을 은근히 권했다. 지금 바로 결제하면 10%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나는 그냥 얼버무리고 자리를 일어났다. 나오면서 든 생각은 ‘내가 지금 25만 원을 내고 고작 이런 뻔한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그날 밤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느낀 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4캔에 1만 원짜리 수입 맥주를 샀다. 집에 도착해서 불을 끄고 거실 소파에 앉으니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상담사가 시킨 대로 메시지를 조작해서 보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까? 만약 그렇게 해서 관계가 유지된다 해도, 그건 내가 아닌 가면을 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연애 코치라는 사람들은 ‘성공률’을 말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수학 문제처럼 풀리는 건 아니지 않나. 상담실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혼자 있으니 그 방법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공허한지 느껴졌다.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 이후로도 그 사람과 카톡을 몇 번 더 해봤지만, 결국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관계가 식어가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외부의 힘을 빌리려 했던 거니까. 지금 생각하면 25만 원은 그냥 인생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은 그때 그 상담사가 알려준 ‘답장 텀 두기’ 같은 걸 무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괜히 나 자신이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때 그 상담실 문을 그냥 열지 말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여전히 연애는 어렵고, 내가 하는 행동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길은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무뎌지겠지 생각할 뿐이다.

댓글 3
  • 커피 찌꺼기 냄새랑 건조한 바람이 묘하게 공기청정기랑 잘 어울리네요. 상담 내용 생각하면 진짜 씁쓸하네요.

  • 답장 텀을 이렇게까지 실천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정말 답답한 마음이 좀 느껴져요.

  • 3개월 전의 ‘ㅎㅎ’ 횟수 때문에 그렇게 고민했던 게 정말 어리석었네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