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 카페에서 마주 앉았던 순간
최근에 나도 모르게 또 소개팅 앱을 깔았다. 이번에는 무슨 기독교 소개팅 어플인지 뭐 그런 거였는데, 사실 종교가 딱히 깊은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랬나 싶다. 그냥 주변에 아는 사람은 다 짝이 있고, 주말마다 혼자 있는 게 지겨워서 그랬겠지. 프로필 사진을 고르고,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 너무 잘난 척하는 건 싫고, 그렇다고 너무 축 처진 모습으로 적기도 뭐하고. 결국 적당히 평범하게 채워 넣었다. 앱 이용료로 한 달에 3만 원 정도 결제했는데, 이게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결제 안 하면 대화 기회조차 안 오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
어색했던 와인 모임의 기억
앱이 하도 지겨워서 예전에 강남 근처에서 했던 와인 모임에 나갔던 적이 있다. 참가비가 5만 원인가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와인 몇 잔 마시고 대화하는 곳이었다.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는데, 다들 뭔가 ‘좋은 사람 있으면 오늘 바로 채가야지’ 하는 눈빛들이 보여서 묘하게 불편했다. 나는 그냥 와인이나 한 잔 하고 싶어서 간 건데, 옆자리 사람은 대뜸 동문회가 어디냐, 직장이 어디냐 꼬치꼬치 묻는데 기가 차더라. 그때는 내가 30대 중반이었는데, 결혼 적령기라고 다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모임에는 발길을 끊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게 사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같다.
대화의 기술이라는 것들에 대하여
가끔 유튜브 같은 데서 소개팅 필승 노하우니 뭐니 하는 영상들을 본다. 무슨 리액션을 해야 한다, 어떻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뭐 그런 것들. 사실 그걸 보고 있으면 현타가 온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데 왜 대본까지 짜가면서 연기를 해야 하나 싶어서. 물론 상대방도 긴장하니까 맞춰주는 게 예의긴 하지만, 요즘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나가면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아니까 더 피곤한 것 같다. 예전에 소개팅했던 상대는 자꾸 자기 자랑만 늘어놓아서 커피값 내는 시간조차 아까웠던 적도 있고, 반대로 내가 너무 긴장해서 횡설수설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불킥을 했던 적도 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결정사까지는 아직 안 가봤지만, 친구들 중에 몇몇은 이미 거기 등록해서 등급 평가니 뭐니 받는 걸 봤다. 이상형이 손석구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다들 조건 따지고 있는 거, 모르는 바 아니다. 나도 나이가 차니까 부모님이 가끔 “이번에 누구 딸인데 선 한번 볼래?”라며 은근히 압박을 준다. 어쩔 때는 공개구혼이라도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막막할 때가 있다. 근데 또 막상 나가보면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된다. 사람 마음이 억지로 엮는다고 엮이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만남
앱을 다 지웠다. 3만 원어치 대화도 딱히 건진 게 없었다. 알바생인지 진짜 사람인지 모를 대화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는 관계들. 이제는 소개팅 어플보다는 그냥 동네 근처에서 적당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어렵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낀다. 내일은 그냥 동네 산책이나 가야겠다. 요즘 서울 날씨가 좋은데, 굳이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기 빠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혼자 있는 게 익숙해지면 그게 또 편한 것 같기도 한데, 왜 또 가끔은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건지 모르겠다.
동문회 질문에 굳이 답변할 필요 없이 그냥 와인 마시는 것 자체를 즐기고 싶었나 봐요. 저도 가끔 그런 순간이 필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