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사에 상담을 다녀왔는데 왠지 더 허전해졌다

결정사에 상담을 다녀왔는데 왠지 더 허전해졌다

서류뭉치와 묘한 기분

지난주에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에 다녀왔다. 친구들이 하도 주변에서 이제는 이런 데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난리여서, 등 떠밀리듯 예약하고 방문했다. 20대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기분이 참 묘했다. 상담실은 예상보다 훨씬 차분했고, 커피 한 잔을 주며 건네받은 서류들은 꽤 묵직했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활자로 확인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낯설었다. 상담 매니저분은 굉장히 친절했는데, 그 친절함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붕 뜨게 만들었다.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의 가입비를 이야기하는데, 이게 과연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해결해줄 열쇠가 될지 아니면 그냥 비싼 입장권일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엄마친구아들 같은 사람은 없었다

매니저님이 보여준 프로필들은 다들 조건이 너무 완벽했다. 연봉, 학력, 집안 배경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이 안 느껴졌다. 그냥 엑셀 파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겪었던 이별의 아픔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냉소적인 건지 모르겠다. 엄마 친구 아들 같은 완벽한 사람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는 다들 그런 조건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내가 그 사람들과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서로의 조건을 맞추는 비즈니스 미팅 느낌이랄까. 괜히 내가 이런 곳에 앉아 있다는 게 조금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걸로 정말 정리가 될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섞여 있었다.

펫로스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르다

며칠 전 우연히 동물복지센터에서 하는 펫로스 관련 강연 내용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거기서 ‘이별은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안고 가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왜 그렇게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결정사 상담실의 그 깔끔한 인테리어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회원 등급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내 마음속 어딘가 텅 빈 느낌이 확 덮쳐왔다. 이별을 극복하려고 무작정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조급함이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었다. 상담 매니저는 다음 주까지 가입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그냥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또 혼자 집에 들어가는 건 무섭고.

5년의 흔적을 5분 만에 넘기려니

돌이켜보면 4~5년 가까이 만났던 그 사람과의 기억이 아직 머릿속에 가득하다. 사주나 타로를 보면 다들 이별을 잘 극복하고 좋은 사람이 올 거라고 하는데, 그 좋은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지금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냥 어제 먹은 밥이 뭔지, 오늘 퇴근길에 날씨가 좀 쌀쌀했다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결정사에서 본 프로필들에는 그런 사소한 일상의 기억이 낄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돌싱 연애’가 이런 식의 필터링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너무 예민한 건지 잘 모르겠다. 상담료로 낼 돈이 아까운 건 아닌데, 그 돈을 낸다고 해서 내 마음이 정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결론이 나지 않는 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휴대폰에 저장된 매니저님의 번호를 지워야 할지, 아니면 다시 한번 연락해서 가입 신청을 해봐야 할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 아마 내일쯤이면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오늘 밤은 괜히 마음이 시끄럽다. 누군가를 새로 만난다는 게 이렇게 복잡하고 계산적인 일이었나 싶어 다시금 피로해진다. 아마 내일은 그냥 맛있는 거나 사 먹으면서 좀 잊으려고 노력할 것 같다. 정말로 새로운 만남이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외로움을 다른 것으로 덮고 싶은 건지, 이 밤이 지나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댓글 1
  • 펫로스 강연 말씀처럼, 이별이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 텅 빈 느낌이 드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