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보낸 주말 오후
지난주엔 정말이지 마음먹고 결혼 정보 업체라는 곳에 상담을 받으러 다녀왔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나만 너무 느긋한가’ 싶다가도, 막상 가서 가입비나 절차를 듣고 오니 현실감이 확 덮쳐왔다. 상담해주시는 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마치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 학벌, 직장, 연봉, 심지어 부모님 직업까지 꼼꼼하게 적어 내는 그 서류가 어찌나 낯설던지. 가입비가 3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까지 올라가는 걸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생각해보면 그 돈이면 차라리 엠티 펜션이라도 잡아서 친구들이랑 길게 놀다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상담 내내 내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나 싶어 괜히 민망해서 헛기침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소규모 홈파티나 하려던 계획
결혼 정보 업체 상담을 다녀오고 나니 왠지 모르게 기운이 쭉 빠졌다. 원래는 이번 연말에 집으로 친한 지인 몇 명을 불러서 소규모 케이터링이라도 주문해 놓고 홈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요즘은 돌잔치 뷔페나 대형 행사장에서 하는 것보다, 그냥 편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떠드는 게 제일 속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담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인연’이니 ‘조건’이니 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아서인지, 파티 음식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괜히 마음이 복잡했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케이터링 업체 검색창만 한참 쳐다보다가 창을 닫아버렸다. 작년에 연말 파티랍시고 이것저것 준비했다가 뒤처리하느라 진땀 뺐던 기억도 나고, 이번엔 그냥 간단히 피자나 시켜 먹을까 싶기도 하다.
돌잔치 뷔페와 결혼 상담 사이의 묘한 거리감
주말에 지인 아기 돌잔치가 있어서 오랜만에 돌잔치 뷔페에 다녀왔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반지 하나를 선물하고 왔는데, 예전에 지인 집에서 돌반지가 사라졌다는 글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어서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런데 뷔페 음식을 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정보 업체에서는 그렇게 까다롭게 조건을 따지는데, 막상 이렇게 돌잔치 현장에 와보면 다들 그냥 사람 좋고 아이 잘 키우며 사는 게 전부인 것 같아서 말이다. 500만 원씩 들여서 만남을 주선받는 것과, 뷔페에서 밥 먹으며 서로 안부 묻는 것 사이에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가끔은 잘 모르겠다. 상담받을 때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나면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서류 더미일 뿐이라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연말 파티를 준비하며 느끼는 막연한 불안
벌써 12월 중순이다. 연말 분위기가 나야 하는데, 올해는 유난히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 작년에는 서울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서 동생네랑 같이 돌아다니느라 꽤 바빴는데, 올해는 결혼 정보 업체 상담 때문에 내 인생을 한 번 훑어보는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년에는 정말 누군가를 만나게 될까?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혼자 소규모 홈파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엠티 펜션 예약해서 친구들이랑 시끄럽게 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들 바빠서 그것조차 쉽지가 않다. 케이터링 업체 리스트를 보다가 5만 원, 10만 원 하는 메뉴 구성들을 보고 있으니, 상담할 때 들었던 가입비 생각이 다시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냥 이 돈으로 맛있는 거나 사 먹는 게 훨씬 확실한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결론 없는 연말의 기록
글을 쓰다 보니 상담을 다녀온 것인지, 그냥 연말에 우울해진 것인지 정리가 잘 안 된다. 사실 결혼 정보 업체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도 싫고, 괜히 확인했다가 기분만 상할까 봐 그냥 상담 결과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연말 파티 메뉴로 뭘 할지는 여전히 결정 못 했다. 그냥 동네 맛집에서 포장해오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 돌싱녀든 미혼이든, 결국 연말에는 다들 자기 옆을 채워줄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그냥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 내일은 케이터링 대신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대충 파스타나 해 먹어야겠다. 상담실에서 들었던 그 수많은 조건들이, 따뜻한 파스타 한 그릇보다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이게 맞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돌잔치 구경하면서 생각해보니, 상담받는다고 꼭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겠네요.
돌잔치 뷔페에서 본 사람들 생각하면, 결혼 정보 업체 상담 비용이 얼마나 큰 돈인지 실감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