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한복판에서 200만 원 날리고 온 날

강남역 한복판에서 200만 원 날리고 온 날

상담 예약만 잡는 데도 일주일이 걸렸다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을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하고, 명절마다 친척들이 건네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결혼정보회사’라고 검색창에 치는 것 자체가 어쩐지 패배한 기분이라 며칠을 망설였다. 그러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업체에 상담 예약을 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급 나누고, 또 어떤 식으로 매칭을 해주는지. 상담 예약도 바로 되는 게 아니었다. 담당 매니저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직업, 연봉, 학벌을 물어보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때 이미 기분이 묘했다. 마치 면접을 보는 기분이랄까. 상담료는 없다고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200만 원이라는 숫자의 무게

상담 당일,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막상 들어가니 카페처럼 꾸며놓긴 했지만, 공기가 다르다. 매니저는 나를 보자마자 차트를 확인하더니, “지금 본인 스펙이면 노블레스 등급은 무리지만, 일반적인 프리미엄 서비스는 가능하다”라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대략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 가입비라는 게 한 번 내고 끝이 아니라, 횟수 제한이 있다는 점이 참 이상했다. 5회, 7회, 10회… 횟수를 더할수록 가격은 껑충 뛰었다. 5번에 200만 원이면 한 번 만날 때마다 40만 원을 길바닥에 뿌리는 셈인데, 이게 맞나 싶었다. 매니저는 지금 가입하면 특별 할인이라며 오늘 당장 결제하면 10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마치 홈쇼핑 같았다. 내가 망설이자 “요즘은 다들 이렇게 해요, 밖에서 자연스러운 만남 기다리다가 시간 다 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비수로 꽂히던지.

나는솔로 출연진과 비교하게 되는 현실

집으로 돌아와서 넷플릭스를 켰다. ‘나는솔로’가 틀어져 있었다. 화면 속 출연자들은 다들 잘나 보였다. 일반인인데도 관리 잘 된 얼굴, 세련된 옷차림. 저 사람들은 저기 나와서 공짜로 연애도 하고 인기도 얻는데, 나는 왜 200만 원을 내고 낯선 사람과 맞선을 봐야 하나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정사에서 매칭해주는 사람들이 과연 내가 꿈꾸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통하는 상대일까? 아닐 것 같다. 결국은 조건표에 적힌 숫자들을 맞추는 게임이 아닐까. 39살이 넘어도 눈밑이 탱탱한 사람이 화면에 비치면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은 관리를 얼마나 받은 걸까’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게 정말 연애인지, 아니면 서류 전형 통과하기 위한 몸부림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했다.

어설픈 기대와 남은 찜찜함

결국 상담만 받고 결제는 하지 않고 나왔다. 매니저는 문자로 계속 할인 혜택을 언급하며 재촉했다. 200만 원이면 차라리 여행을 가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이대로 혼자 사는 게 더 편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말하면, 결정사에 가면 뭔가 확실한 해결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위치만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온 느낌이다. 시장에 내놓아진 상품이 된 기분이라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덜컥 겁이 난다. 내가 정말로 결혼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는 건지. 지금도 그 매니저의 전화번호를 차단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냥 안 하고 넘어가기엔 또 찝찝하고, 막상 하려니 이게 맞는 길인가 싶고. 정답이 없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누가 그냥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댓글 4
  • ‘나는솔로’ 나오는 거 보면서 저 사람들 생각하니까, 저 나이에 돈 주고 낯선 사람 만나는 게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네요.

  • 처음 만난 매니저의 태블릿 보여주기만 해도, 왠지 돈 값 제대로 못하는 기분이라 확 싶었습니다.

  • 처음 상담 예약부터 느낌이 너무 이상했어요. 마치 거대한 거래를 앞둔 것처럼요.

  • 화려한 묘사 덕분에, 그 긴장감과 찜찜함이 실제 와닿네요. 특히, 매니저의 홈쇼핑 마케팅 말투가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