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가 먼저 나가는 만남의 풍경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결혼정보회사 상담실장은 꽤나 친절했다. 압구정에 위치한 깔끔한 사무실이었는데, 사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조금 망설였다. 요즘은 어플도 잘 되어 있고,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최고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이런 곳까지 가야 하나 싶었던 거다. 막상 앉아서 상담을 받아보니 듀오 같은 곳들이 왜 매출이 계속 오르는지는 알 것 같더라. 사람이 나이가 좀 차니까 시간 낭비를 하기 싫다는 마음이 커졌고, 검증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생각보다 강력했다. 가입비가 수백만 원 단위로 오가는 걸 보면서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싶은 회의감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그게 또 결정사의 현실이니까.
스펙이라는 이름의 정보 경쟁
상담 중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내 조건이 점수처럼 매겨지는 기분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결정사 등급이라는 게 진짜 있구나 싶었다. 내 연봉, 학벌, 집안 환경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묘하게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예전 세이클럽타키 같은 채팅방에서 서로 누군지도 모르고 떠들던 시절과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은 일단 조건이 맞아야 대화의 물꼬라도 틀 수 있는 구조다. 상담사가 보여준 예시 프로필을 보는데, 상대방의 직업과 자산 규모가 적힌 서류를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기보다는 기계적인 냄새가 났다. 정보 경쟁이라는 말이 딱 맞다.
리드하는 쪽과 리드당하는 쪽의 묘한 관계
막상 첫 만남이 잡혔을 때 나는 꽤 긴장했다.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상대는 생각보다 훨씬 세련된 사람이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남자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막상 대화를 해보니 여자 쪽에서 대화를 리드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재혼이나 만혼 전문 업체인 르매리 쪽 글을 보니, 경제력이나 스펙은 단지 만남의 기회를 만드는 조건일 뿐이고 실제 대화의 리드는 기질 차이라더라. 그날 나는 내가 준비해 간 멘트들을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상대가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갔고, 나는 그저 웃으며 듣기만 했다. 내가 주도권을 뺏긴 건지, 아니면 편하게 대접받은 건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실제 나이와 직업이 주는 무게감
SBS에서 했던 ‘내 남은 연애’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다들 서로의 직업을 공개할 때 가장 긴장하지 않나. 내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 만나서 커피를 마실 때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멋지게 포장할까 고민하는데, 막상 상담실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이미 상대의 바닥을 어느 정도 알고 들어온다. 이게 장점일까 단점일까. 궁금함이 없다는 건 실망할 확률을 줄여주지만, 동시에 설렘이라는 감정까지 희석시킨다. 슈퍼카를 타고 나타나 CEO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이미 명함 뒤에 적힌 내용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이 구조가 때로는 참 피로하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약속들
솔직히 말해서 이 시스템이 내 인연을 찾아줄 거라는 확신은 지금도 반반이다. 매주 혹은 격주로 오는 상대방의 프로필을 열어보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됐다. 30대 후반, 남자 결혼 적령기라고 다들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하는 문제다. 어떤 날은 소개받은 사람과 대화가 정말 잘 통하는데도 다음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다가도, 그냥 인연이 아니었겠지 하고 넘긴다. 결정사 비용이 한두 푼도 아닌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만남이 계속될 때면 이게 맞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도 핸드폰으로 다음 주 미팅 일정을 확인한다. 이게 내 연애의 최선인지, 아니면 더 돌아갈 길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채로.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의 배경에 대한 정보가 미리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서류에 모든 정보가 정리되는 모습이 오히려 좀 무섭네요. 특히 연봉이나 학벌 같은 요소들이 '점수'처럼 사용될 때, 개인의 매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
서류를 주고받는 과정이 마치 데이터 분석 같네요. 사람을 ‘숫자’로 평가하는 방식에 조금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