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 상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결혼정보업체 상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강남역 인근에 있는 듀오 상담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조금 덤덤했다. 주변에서 하도 결혼정보업체 이야기를 하길래 그냥 호기심에 한 번 다녀와 볼까 싶었던 게 전부였다. 비용이 꽤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 가입비가 3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도 한다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마주한 상담사는 내 조건들을 나열하며 마치 물건을 분류하듯 시장 가격을 매기는 느낌을 줬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반려자를 찾는 일일 텐데, 그 공간에서는 연봉과 학벌이 곧 사람의 등급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엑셀 시트 위에 놓인 사람들의 조건들

상담사가 보여준 회원 현황판은 정말이지 냉정했다. 어떤 직업군이 인기가 많고, 어떤 조건이 매칭률을 떨어뜨리는지 데이터로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내가 지금 사랑을 찾으러 온 건가, 아니면 중고차를 감정받으러 온 건가’였다. 5년 동안 매출이 300억 대에서 400억 대로 뛰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왜 사람들이 이런 곳에 기대를 거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씁쓸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람을 만날 때 이렇게까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걸까.

기질 검사와 사주 상담의 기묘한 공통점

상담 중간에 기질 검사 같은 것을 시키더라. MBTI와는 조금 다른 성향 분석이라는데, 이걸 하면 좀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아줄 수 있다고 했다. 상담사가 내 결과지를 보며 ‘이런 성향은 이런 분과 만날 때 트러블이 적다’고 설명하는데, 어쩐지 예전에 재미로 봤던 남자친구 사주 상담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상담학과나 동양철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사주를 풀어줄 때의 논리, 그리고 여기서 데이터를 통해 배우자를 추천하는 논리가 근본적으로는 ‘불안 해소’라는 지점에서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알 수 없으니,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이나 검사 결과에라도 의존해서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은 거겠지.

다름과 이찬, 그리고 화면 속의 연애

요즘 드라마나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 AI에게 연애 상담을 요청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내가 직접 상담실에 앉아 있을 때도 느꼈지만, 이제는 사람보다 데이터나 기계가 내 감정을 더 정확하게 분석해 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엉뚱한 착각으로 웃음을 주지는 못했지만, 나도 모르게 상담사가 제시하는 수치에 내 연애운이나 결혼운을 대입해 보고 있었으니까. 그날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3.4% 정도였던 내 기대치가 왠지 더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의문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무심코 와인을 한 병 샀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샀던 그 와인과 같은 종류였는데, 막상 사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공허함만 남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 속도대로 살다가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는 게 맞는 걸까.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정해진 매칭 횟수와 조건 속에서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마 오늘 상담받은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도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해’라고 하겠지만, 집에 와서 조용히 앉아 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괜히 헛헛하다. 당장 가입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돌아온 게 잘한 일인지, 아니면 그냥 흐름을 탔어야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댓글 4
  • 데이터 기반 분석이 흥미로운데, MBTI처럼 직관적인 해석은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 데이터 분석에 빠지면, 진짜 감정은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엑셀 시트처럼 딱딱한 조건만으로는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 와인 선물하는 마음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정말 공감해요. 기질 검사 결과에 따라 배우자 매칭하는 방식도 결국 불안감을 줄이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기질 검사 결과가 너무 와닿았어요. 마치 제 성격 특성을 스스로 꿰뚫어본 느낌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