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부산 해운대 근처에서 열린 와인 모임에 다녀왔다. 사실 처음부터 의욕이 넘쳤던 건 아니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무기력함에 조금 지쳐있기도 했고, 40대에 들어서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예전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서였다. 그래도 여름 데이트 코스나 소개팅 프로그램 같은 거창한 이름보다는 그냥 가볍게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라는 말에 혹해서 예약금을 보냈다. 인당 8만 원 정도였나, 식사와 와인 몇 잔이 포함된 가격이었는데 호텔 뷔페보다는 저렴하지만 술자리치고는 조금 고민되는 금액이었다.
예약할 때는 몰랐던 묘한 분위기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분위기가 차분했다. 와인 모임이라고 해서 북적거리는 파티 같은 걸 상상했던 내가 조금 민망해질 정도였다. 다들 적당히 차려입고 왔는데, 어색하게 서로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는 모습이 묘하게 낯설었다. 내가 갔던 곳은 해운대 쪽이었는데, 보통 이런 모임은 서울가든호텔처럼 호텔 다이닝 행사처럼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질문은 조심스러웠고, 혹시라도 결례가 될까 봐 말을 아끼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무알코올 음료를 찾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 요즘은 술보다는 그냥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했다.
와인 한 잔이 주는 거리감
테이블 위에 놓인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면서 괜히 창밖만 쳐다봤다. 폴리페놀이 어쩌고 하는 건강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정적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분은 부산에 산 지 꽤 오래되었다고 했는데, 결혼정보회사 이야기가 은근슬쩍 나오다가 금방 끊겼다. 40대가 넘어가면 소개팅이나 모임에서 연봉이나 직업을 대놓고 묻지 않아도, 대화의 결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가늠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참 피로하다. 그냥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으면 즐거우면 그만인데, 왜 다들 어딘가 조금씩 긴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시끄러운 술집이 나았을까 싶기도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한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사회자가 가벼운 게임 같은 걸 진행했다.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어색함을 깨보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나는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핸드폰을 봤다. 엄마 친구 아들이 최근에 소개팅을 해서 잘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나만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집에 가서 무료 재회 상담이나 찾아보는 신세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결국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거창하게 연락처를 교환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이상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여전히 모호한 마무리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시원했다.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는데, 아까 모임에서 같이 앉았던 몇몇 사람들이 무리 지어 가는 모습을 봤다. 저들은 저들끼리 2차를 가나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 나는 그냥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사고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술을 한두 잔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띵했다. 와인이 맛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좀 애매하다. 그냥 그 시간만큼의 경험을 산 것 같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에 나갈지 물어본다면 아마 조금 고민할 것 같다. 확실한 건,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거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누우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오늘 뭘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시간을 쓴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말은 그렇게 지나갔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2차 생각에 부끄러워지던 순간, 제가 왠지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해운대쪽 모임은 좀 더 조용한 분위기 좋아하시는 분들께 딱일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녀왔었거든요.
해운대에서 만나는 와인 모임은 서울 호텔 행사처럼 느껴지게 생겼다.
창밖 보면서 생각하니까 폴리페놀 얘기는 싹 잊혀진 것 같아요. 이런 분위기 좋아하는데, 혹시 다음에 또 이런 모임이 있으면 좀 더 활발하게 참여해 볼까 고민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