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 쪽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친구들도 다들 각자 바빠졌다. 예전에는 그냥 주말에 연락해서 동네 카페에서 보고, 아니면 서울 실내가볼만한곳 찾아서 대충 휘둘러보고 오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만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다들 비슷하게 나이 먹고 그러려니 싶다가도 어느 순간 나만 혼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서 홧김에 결혼정보업체라는 곳들을 몇 군데 알아보고 상담 예약을 잡았다. 사실 상담 예약이라는 게 큰 결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덜 불안해지려고 했던 행동이었던 것 같다.
상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분당 근처에 있는 꽤 규모가 있다는 결혼정보회사 몇 곳을 다녀왔다. 상담실에 들어서면 특유의 묘한 정적과 함께 따뜻한 차를 내어주는데, 그 분위기가 묘하게 사람을 압박한다. 상담사분들은 다들 프로페셔널했다. 대략적인 가입비가 수백만 원에서 비싸게는 천만 원 단위까지 오가는데, 처음엔 그 숫자를 듣고 정신이 좀 아득해졌다. 내 연봉이랑 직장, 키, 그리고 부모님 직업까지 엑셀 표 같은 곳에 입력하면서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30대 중반쯤 되니 시장에서 내 가치가 숫자로 매겨지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상담비는 따로 없었지만 상담 시간만 거의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가서 나중엔 진이 다 빠졌다.
대구에서 소개팅을 하러 내려갔던 날
결혼정보회사 등록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와중에 아는 지인 소개로 대구 소개팅을 나갔다. 사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해주는 프로필보다 지인이 건네준 카톡 사진 한 장이 훨씬 사람 냄새나긴 했다. 왕복 차비랑 그날 식당에서 쓴 돈만 해도 15만 원은 훌쩍 넘었던 것 같은데, 결과는 잘 모르겠다. 대구까지 내려가서 어색한 공기만 마시다 온 것 같아 허무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모임도 나가보고 경기광주가볼만한곳 찾아 드라이브도 가보고 다 해봤지만, 결국 사람 만나는 게 가장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 분당 모임 같은 걸 나가봐도 다들 목적이 너무 뚜렷해서 대화가 겉돌 때가 많다.
서울 캠핑장 예약보다 어려운 만남
가끔은 서울 캠핑장 같은 곳이나 예약해서 혼자 멍하니 불멍이나 할까 싶다가도, 주말에 집에만 있으면 왠지 도태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편하다. 요즘은 또 모임 앱 같은 게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걸로 사람들을 만날까 싶기도 한데, 막상 또 그런 곳에 가보면 너무 가벼운 만남만 오가는 것 같아 금방 지친다. 예전엔 그냥 친구들이랑 웃고 떠드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일상이 온통 ‘누구를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좀 피곤하다.
결정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결혼정보회사 가입을 할지 말지는 아직도 결정 못 했다. 상담을 받았던 실장님은 자꾸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며 며칠 내로 결정하라고 연락이 오는데,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괜히 스트레스만 받는다. 어쩌면 내가 너무 사람을 조건으로만 재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조건 안 보고 만나다가 시간만 날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주말마다 어디를 가야 하나, 누구를 봐야 하나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딱히 해결책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게 완전히 편한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그냥 이렇게 지내보는 중이다.
대구 소개팅에서 지인 사진 보는 게 진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좀 더 깊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대구 소개팅에서 카톡 사진 보는 게 진짜 현실을 반영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좀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거든요.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엑셀에 정보 입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상품처럼 느껴지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