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하고 나서 한 2년 동안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주말에는 그냥 멍하니 유튜브나 보고 가끔 마음이 답답하면 이혼카페 같은 곳에 들어가서 남들 사는 얘기 읽어보는 게 전부였다. 거기 글들을 보면 다들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다시 짝을 찾고 싶어 하는 눈치들이 보였다. 나도 처음에는 무슨 재혼이냐, 내 인생에 결혼순서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명절이나 주말에 혼자 밥 먹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더라. 그러다 문득 나이만 먹고 이대로 늙어가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소위 말하는 결혼정년기는 한참 지났지만, 그래도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지 싶어서 인터넷으로 대구재혼 관련 업체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광고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팠는데, 그냥 그나마 후기가 조금 있고 이름이 낯익은 곳으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이혼카페 눈팅을 끝내고 직접 상담을 예약하게 된 계기
사실 처음부터 업체를 찾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혼자 지내는 삶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했었고, 주변에 이혼 사실을 알리는 것도 꺼려져서 그저 익명의 공간인 이혼카페에서 글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거나 위안을 얻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불쑥불쑥 찾아왔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남들은 재혼해서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큰 용기를 내어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 목소리는 꽤나 사무적이었지만 친절했고, 예약을 잡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범어역 근처 상담실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가입 조건과 가입비
내가 찾아간 곳은 대구 지하철 2호선 범어역 3번 출구 근처에 있는 대구재혼 전문 ‘인연재혼센터’였다. 큰 빌딩 4층에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누가 볼까 봐 주변을 힐끗거리며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상담실은 꽤 조용했고, 예약제라 그런지 대기실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상담 실장이라는 분이 차를 내주며 이런저런 질문을 시작했는데, 질문의 수위가 생각보다 꽤 구체적이고 날카로웠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건 역시 직업과 자산 상태, 그리고 자녀 양육 여부였다. 그러더니 가입비 테이블을 보여줬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세서 놀랐다. 가장 기본 등급이 280만 원이었고, 상대방의 학벌이나 자산 수준에 따라 매칭 범위를 넓히려면 450만 원, 600만 원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1년에 최소 5번에서 6번 만남을 보장해준다는데, 한 번 만날 때마다 몇십만 원씩 깨지는 꼴이라 가슴이 턱 막혔다.
일반 매칭 앱이나 무료 소개팅 서비스와의 서류 제출 방식 차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학생소개팅 앱이나 일반 무료소개팅 서비스 같은 것도 요즘은 인증을 거친다지만, 재혼결정사는 서류 요구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혼인관계증명서 상세본부터 시작해서 제적등본, 졸업증명서, 재직증명서, 원천징수영수증까지 떼어와야 한단다. 심지어 본인 명의로 된 아파트 등기부등본까지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실장은 서로 확실하게 검증된 사람을 만나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며 안심하라고 했지만, 내 모든 개인정보와 자산 규모가 등급으로 매겨져서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는 생각에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예전에 아는 동생이 일본친구사귀기 어플이나 가벼운 펜팔 사이트 같은 걸로 사람 만날 때는 이런 골치 아픈 절차가 전혀 없었다는데, 나이 들고 돌싱이 되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상담 도중 느꼈던 묘한 불쾌감과 조건화된 인간관계의 씁쓸함
상담은 거의 1시간 40분 동안 이어졌다. 실장님은 친절한 듯하면서도 내 조건을 은근히 분석하는 화법을 썼다. 회원님 나이대에는 남자분들이 보통 자녀가 없는 여성을 선호하신다거나, 아무래도 자녀를 직접 키우고 계시니 만남의 폭이 조금 좁아질 수는 있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했다. 마치 백화점 매대에서 이월 상품 가격 흥정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 사람들도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겠지만, 듣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여기는 연애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조건 맞춰서 살러 오는 곳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중개라는 게 결국 서로의 패를 다 보여주고 하는 거래라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다. 예전에 카페에서 어떤 회원이 결정사는 돈 내고 상처받으러 가는 곳이라고 썼던 글이 생각났다. 그땐 그냥 징징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알 것 같았다.
상담을 마치고 나와서 아직도 가입 신청서를 쓰지 못한 이유
상담을 다 마치고 실장이 계약서를 밀어 넣으며 오늘 계약하면 가입비를 조금 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대기 기간이 보통 두 달 정도 걸리니 하루라도 빨리 등록하는 게 유리하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집에 가서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왔다. 범어역 사거리를 걷는데 찬 바람이 확 불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300만 원 돈을 내고 내 조건을 평가받아가며 억지로 사람을 만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렇게 혼자 사는 게 나은 건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집에 와서 다시 스마트폰을 켜고 다른 사람들의 실패 후기를 검색해 보는데, 갈수록 마음만 더 심란해진다. 누군가는 거기서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해서 잘 산다는데, 나한테도 그런 운이 따를지는 전혀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살기엔 외로움이 너무 크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아직 덜 된 걸지도 모르겠다.
정말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네요. 특히 개인 정보까지 상세하게 요구하는 부분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모습이 이해가 갑니다.
유튜브에서 보는 영상보다 실제로 상담받고 보니 복잡한 감정들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공감했어요. 카페 회원님 말씀처럼, 마치 이월 상품 흥정하는 기분이 들었을 때가 있었거든요.
아, 서류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거 보니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상담실을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